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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3

“여성 암 환자는 오후에 치료받아야” 수학으로 생명현상 밝히는 김재경 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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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환자 살렸다는 기사 보고 미시간대 유학,필즈상 허준이 교수와 같이 학문 경계 넘나들어 24시간 주기 좌우하는 생체시계의 새 이론 제시 폐기 직전 화이자 신약 살려내 7조원 매각 성사]
간호사들은 늘 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잠자는 시간이 일정치 않다. 그런데 같은 시간을 자도 견딜 만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 김재경(41) 한국과학기술원(KAIST) 수리과학과 교수는 “개인마다 아침, 밤 언제 잠을 자느냐에 따라 필요로 하는 수면량이 다른데, 무턱대고 매일 일정하게 자기 때문에 다음날 피곤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매일매일 달라지는 필요 수면량을 계산해서 개인의 수면 주기에 맞춰 기상 시간을 알려주는 앱(app·응용프로그램)을 곧 출시할 예정이다. .
김재경 교수는 기초과학원(IBS) 의생명과학그룹을 이끄는 국내 대표적인 수리생물학자이다. 말 그대로 수학으로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대표적인 연구 분야가 생체시계이다. 인간은 몸 안에 시계가 있는 것처럼 24시간 주기에 따라 호르몬이 분비되고 세포가 분열한다. 김 교수는 이러한 생체시계를 수학 공식으로 만들어 쥐에게 듣던 약이 왜 사람에는 효과가 없는지, 여성 암 환자는 오전보다 오후에 받는 항암치료가 더 효과가 있는지 밝혀냈다.
김 교수는 대학원에서 순수 수학을 공부하려다가 우연한 기회에 수리생물학을 접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공교롭게도 그가 미국 미시간대에서 생물학 강의를 들으며 학문의 경계를 넘던 시기, 작년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도 같은 대학원에서 대수기하학으로 다른 수학 분야인 조합론의 난제를 해결했다. 두 사람은 응용과 순수 수학으로 정반대 길을 갔지만,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접근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수학으로 심장병을 치료한다
–김 교수와 허준이 교수는 미시간대에서 같이 공부했다고 들었다.
“2011~2013년 같은 대학원에 있었다. 나는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나와 수학과 대학원을 갔고, 허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역시 수학과 대학원을 갔다. 그러다가 미시간대 대학원에서 다시 만났다. 그러고 보면 둘 다 뒤늦게 새로운 전공을 찾은 셈이다.”
–허준이 교수가 작년 수학계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받으면서 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런데 수리생물학은 무척 생소하다.
“관심이 있는 생명현상이 있으면 수학의 언어로 번역을 해서 컴퓨터를 이해시키고, 그걸 가지고 새로운 예측을 하는 학문이다. 이를테면 ‘가속도(a)는 힘(F)에 비례하고 질량(m)에 반비례한다’는 뉴턴의 운동법칙을 컴퓨터는 알아듣지 못한다. 이를 F=ma라는 수식으로 번역하면 컴퓨터가 마침내 뉴턴의 운동법칙을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원래 순수 수학을 전공하려 했다고 들었다. 왜 생물학에 도전했나.
“학사 장교로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그때 우연히 인터넷 수학 카페에서 미분방정식으로 세포의 물질 이동을 해석하고, 유체역학으로 심장박동을 분석해 인공심장을 성공시켰다는 KAIST 학보 기사를 접했다. 수학을 꽤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모르는 수학 분야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사람이 건강하게 사는 데 수학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을 가서 새로 생물학을 배우기 어려웠을 텐데.
“다른 수학과 학생들처럼 고등학교 때 생물 과목을 좋아하지 않았다. 논리도 없이 이해가 안 되는 말들을 외우는 것 같아 싫었다. 미시간대 대학원에서 수리생물학을 전공하려면 학부 4학년과 대학원 생물학 전공 3과목을 듣고 B+ 이상 성적을 받아야 했다. 고교 생물도 몰라 학부 1학년 과목부터 청강했다. 남들보다 두 배 많이 수업을 들으니 힘들었지만, 점점 생물학을 논리적으로 볼 수 있었다.”
◇휴지통으로 갈 뻔한 신약 살려내
–생체시계 연구는 어떻게 하게 됐나.
“대학원에서 생체리듬을 연구하는 다니엘 폴저(Daniel forger) 교수를 만나 미국 제약사 화이자의 생체리듬 조절 신약을 같이 연구했다. 당시 생활비를 벌 수 있어 참여했는데 결과는 실패였다. 나중에 보니 폴저 교수의 식에 오류가 있었다. 2년 동안 식을 고쳐 2012년 생체시계의 수리모형을 발표했다.”
–노벨상 수상자들도 몰랐던 생체시계 원리를 밝혀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고 들었다.
“2017년 노벨 의학상은 생체시계의 작동원리를 밝힌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수상자들은 초파리 실험을 통해 ‘PER’ 단백질이 밤에 쌓였다가 낮에 없어지면서 생체시계가 작동하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일반적인 단백질은 시간이 지나면서 급속히 분해되는데 PER 단백질은 분해가 빨라졌다가 느려지기를 반복했다. 싱가포르 의대 교수가 이 문제를 알려와 수학으로 연구했더니 온도에 따라 PER 단백질의 생성과 분해를 조절하는 스위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싱가포르 연구진은 이를 실험으로 입증했다.”
–생체시계 연구가 폐기될 뻔한 신약도 살렸다는데.
“2019년 화이자의 수면 조절 신약이 쥐에서는 효과가 있는데 원숭이에는 듣지 않는 문제를 해결했다. 쥐는 밤에 움직이고 원숭이와 사람은 낮에 활동한다. 그래서 깜깜한 곳에서 약을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예측했다. 실험에서 그렇게 나와 사람마다 약 먹는 시간을 달리 조절하는 ‘시간요법’을 제시했다.”
–화이자로부터 엄청난 사례를 받았겠다.
“회아자가 나중에 그 신약을 미국 제약사 바이오젠에 최대 7조원 규모로 기술이전을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연구비로 10만달러 받고 끝났다. 원숭이와 사람 실험결과가 너무 보고 싶어 돈을 안 받고도 연구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연구비를 제시했을 때 화이자가 1초도 기다리지 않고 승낙했다. 그때 0을 하나 더 붙여 말해도 됐을지 모르겠다. 하하”
◇100년 된 미 FDA 약물 공식도 바꿔
–김 교수가 제시한 시간요법이 최근 항암 치료에도 적용됐다.
“지난해 서울대병원 연구진과 함께 여성 암환자는 오전보다 오후에 받는 항암 치료가 더 효과적임을 밝혔다. 여성의 골수 기능이 24시간 주기를 갖기 때문이다. 여성 환자가 골수 기능이 활발한 오전에 치료를 받으면 항암 부작용으로 골수 기능이 억제된다.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의미다. 남성은 골수 기능이 시간에 따라 차이가 없었다.”
–올 초 미 식품의약국(FDA)의 약물 공식도 수정했다.
“신약 개발 과정에 반드시 쓰는 수학 공식이 있다. 여러 약물이 몸속에서 서로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식이다. FDA가 표준으로 삼은 수식은 1913년 나온 식을 기반으로 했다. 그런데 이 식은 약물을 분해하는 효소의 농도가 낮을 때만 정확했다. 그래서 약물 농도를 몰라도 계산할 수 있는 수식을 만들었다. FDA 수식은 실제 실험 결과와 비교해 정확도가 38%에 그쳤지만 우리 수식은 80%였다.”
–어떻게 난제들만 계속 해결했나.
“생명과학자나 의학자들이 실험 데이터는 정확한데 이론과 다를 때 우리를 찾는다. 하나도 쉬운 게 없다. 여러 가설을 세우고 수식을 만들어 컴퓨타에서 시뮬레이션(가상실험)을 한다. 예측대로 안 되면 수식을 다시 수정하고 키보드를 누르면 된다. 실제 실험보다 훨씬 빨리 가설을 검증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대가들이 했던 것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밝혔다. 정말 멋진 연구이다.”
–실험 연구자와 협업하면 연구 생산성이 엄청 높아지겠다.
“미국의 생명과학, 의학 연구를 대부분 지원하는 국립보건원(NIH)이 실험 연구를 할 때 수학자나 물리학자, 통계학자 같은 이론 연구자와 함께 하는 것을 권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수리생물학자들의 의학 연구 참여가 획기적으로 늘었다. NIH는 이론과 실험을 결합시켜 연구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었다.”
◇미국 수학박사의 10%는 수리생물학자
–수리생물학은 어느 나라가 가장 강한가.
“미국이다. 대학 수학과에는 어김없이 수리생물학자가 있다. 2010년 통계에 수학박사의 10%가 수리생물학자엿다. 지금은 더 늘었을 것이다. 제약바이오산업에서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보스턴의 화이자 연구소에 가면 두 개 층에서 다 나 같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다.”
–그렇게 좋은 연구 환경을 두고 2015년 귀국했다.
“처음엔 미국 연구실 짐을 다 빼지 않았다. 만약 한국 수학계에 적응을 못하면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KAIST가 새로운 연구에 굉장히 개방적이었다. 지금은 생명과학 분야 학회에 가면 모두 먼저 말을 걸어주신다.”
–국내 수리생물학자 규모는.
“넓게 보면 50명, 좁게 잡으면 10명 정도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염병 확산을 수리 모형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수리생물학 교수가 KAIST와 연대, 고대, 포스텍, UNIST 등 많은 학교에 있다. 실험은 돈이 많이 드는 마니 게임이다. 수리생물학은 컴퓨터와 사람만 있으면 생명과학 연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적합한 분야다.”
–대학원생들도 김 교수처럼 생물학을 싫어하던 수학도일텐데.
“연구실 학생들도 대부분 ‘생포자(생물을 포기한 사람)’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요즘 학생들은 유튜브 생물학 동영상 강의를 2배속으로 들으면서 쉽게 배우더라. 일단 생물학 용어와 논리가 이해되기만 하면 공동 연구자와 같이 연구할 수 있어 문제가 없다.”
◇오바마가 부러워하던 한국 수학교육의 추락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 이후 수학 연구에 대한 지원이 늘었나.
“사회적 관심은 높아졌지만 수학자에 대한 대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필즈상 수상을 한국 수학 발전의 동력으로 삼으려면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주면 된다. 큰 연구소를 세워 젊은 연구자들을 대거 뽑았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아직 그런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한국은 수학과가 사라지는데 미국은 수학 잔공자가 늘고 있다고 들었다.
“지방대 수학과들이 계속 사라지고 있다. 반면 미국은 미시간대만 해도 학부 수학 전공자가 400, 500명 된다. 수학을 전공하면 취업하기가 좋기 때문이다.”
–한국 학생들은 미국 학생보다 수학을 더 잘하지 않나.
“미시간대에서 강의했을 때 학부생들의 수학 기본기는 한국 학생보다 많이 부족했다. 우리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학의 디양한 분야를 오래 배웠기 때문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본받자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학교에서 수학 시간과 배우는 내용을 계속 줄이다 보니 학생들의 실력도 예전 같지 않다.”
–요즘 문제가 된 이른바 ‘킬러 문항’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인가.
“수학을 좁은 범위만 가르치니 그 안에서 변별력을 만들려고 문제를 비트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의미 없는 비틂이 안 그래도 어려운 수학을 더 재미없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예전엔 나처럼 지방 일반고 출신도 학교에서 수학을 배워 대학을 갔지만, 지금은 특목고나 학원에서 어려운 문제 풀이 스킬을 배우지 않으면 힘들다. 누구나 열심히 하면 되던 수학이 소수의 전유물이 된 것이다.”